안소영, 여성 성해방 상징 '애마부인'에서 힘겨운 미혼모 싱글맘까지

80년대 톱배우 안소영 EBS 리얼극장서 아들과의 불화 치유 과정 소개

김현주 기자 승인 의견 0

EBS 1TV '리얼극장 행복'에 출연한 배우 안소영(58)은 영화 '애마부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막상 안소영 본인은 이 '애마부인' 때문에 평생을 '애로배우'라는 왜곡된 이미지 속에서 살아야 했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안소영은 '애마부인' 흥행 이후 '애로배우'의 대명사처럼 되면서 세간의 입방아에 시달렸으며 미혼모로 출산을 하면서 국내 생활마저 포기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귀국 이후에는 식당과 김치사업 등을 하고는 있지만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1982년 개봉한 영화 '애마부인'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19금' 내용과 영상으로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애마부인'은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의 우민화 정책을 빗댄 이른 바 '3S정책'(스크린, 섹스, 스포츠)의 대표적인 소산물로 여겨졌다. 

실제로 '애마부인'의 성공 이후 저예산 에로영화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는데, 1982년 국내 극장개봉 영화 56편 중 무려 35편이 에로영화였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교적인 사회분위기가 강해 '여성의 성' 이라는 주제는 영화에서도 엄격한 틀 속에 갇혀 있었는데, '애마부인'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다. 한국 애로티시즘 영화의 신기원을 연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다.

'애마부인'에서 안소영이 남편 임동진과 부부싸움 중 한 "난 물건이 아니고 사람이고 당신 아내예요"라는 대사는 당시 여권 신장의 상징적인 멘트 중 하나가 됐다.

안소영이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한 임동진에게 "나도 똑같이 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도 당시로서는 실생활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1979년 영화 '내일 또 내일'로 데뷔한 안소영은 1982년 영화 '애마부인'로 제18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신인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후 안소영은 '자유처녀', '여자가 두번 화장할 때', '달빛 멜로디' 등 '19금' 영화에 잇따라 주연 여배우로 출연하면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성인영화 배우로 부상했다.

하지만 안소영에게는 '애로배우'라는 꼬리표도 동시에 붙었고, 이는 그후 안소영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결국 안소영은 1990년대말 배우 생활마저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미혼 상태서 아이를 낳은 것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안소영은 '리얼극장 행복'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고충들과 그동안 아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 다시 한국에 돌아오게 된 계기 등을 털어놓았다. 

안소영은 여자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행을 결심하고 떠났다고 했다. 하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기가 버거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미국 생활을 그리워하던 아들은 미국으로 돌아가길 원했고 안소영이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아들은 의욕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하루 종일 하는 것 없이 누워있는 아들과 그가 이해되지 않는 안소영은 마찰이 잦아지며 관계가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동안 한 번도 어려움을 내비치지 않았던 강한 엄마 안소영은 아들의 군 입대를 앞두고 함께 떠난 북경여행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속마음을 20년만의 처음으로 공개하며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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