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나홀로 의견쓰고 나혼자 본다?

김현주 기자 승인 의견 0
   
▲ 사진=포커스뉴스

'최순실 교과서'로 별칭이 붙은 국정 역사교과서가 28일 오후 일반에 공개된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 1시20분 전용 웹사이트에 전자책(e-북) 형태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하고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간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 1·2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대상이다. 그동안 비밀에 붙혀졌던 집필진 명단도 함께 공개된다.  

현장검토본은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개인 의견을 남기려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인인증서나 아이핀, 휴대전화를 통해 가능하다.
 
제시된 의견은 교과서 집필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 전달돼 최종본 확정 때 반영 여부가 결정된다. 

교육부는 "의견 개진은 정해진 양식에 따라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의 오류 내용과 근거, 오류 수정 의견을 적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의견 개진 내용을 '오류' 내용과 근거, 수정 의견 이라고 한 것을 두고 사실상 의견수렴이 아니라 오탈자나 잡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람 이름이나 연도의 오 표기, 오탈자 등 명백한 사안만 추후 반영하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의견 개신이 비공개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교육부는 국민이 개진한 의견은 교육부가 승인한 사람만 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게시판 형식으로 국민 간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져야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이 이루어질텐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전혀 볼 수 없는 '깜깜이' 상태에서는 실효성 있는 의견수렴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12월23일까지 약 한 달간 이런 방식으로 온라인 의견을 수렴한다.

12월 중 관련 학술 토론회도 열 계획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은 내년 1월 중 공개된다. 

정부는 애초 국정 교과서를 내년 1학기부터 일선 학교에 적용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국정 역사교과서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교육부는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정교과서의 적용 시기를 1년 미루는 방안, 일부 시범학교에만 적용하는 방안, 검정교과서와 혼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날 공개되는 현장검토본에서는 건국절 논란, 이승만 박정희를 비롯한 친일·독재 미화 등이 주된 논쟁 대상이 될 전망이다.

지난 25일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이 공개되면서 논쟁은 이미 뜨거워진 상태다. 

편찬기준은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했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북한은 북한수립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바로잡았다"는 명분이다.

교육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는 점을 명확히 서술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지난 10여년간 뉴라이트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1948년은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는 이른바 '건국절' 주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건국절 사관은 항일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격하하고 친일파를 건국공로자로 역사세탁하는 한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5·16군사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으로, 박정희를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역사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편찬기준에는 기존에 '독재자' 이미지가 강했던 이승만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외교적 독립투쟁','대한민국 수립 초기 의무교육과 문맹퇴치 노력',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의 역사적 의미' 등이 편찬기준에 포함됐다.  

박정희 미화 의도도 뚜렷하다. 

'민주화 운동은 경제·사회 발전 과정에서 국민들의 자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 편찬기준으로 제시됐는데, 기존에는 '민주화 운동이 국민 스스로의 자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지'하라고 돼 있었다.   

한강의 기적 등 박정희 정권의 경제적 성과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새마을 운동이 농촌 근대화의 일환으로 추진되었고 이 운동이 최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음에 유의한다"는 편찬기준도 포함됐다. 

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박정희정권에 의한 산업화가 없었으면 민주화도 없었다는 뉴라이트식의 주장이 반영된 박정희 찬양사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교육현장의 분위기도 급변했다. 보수 계열 쪽에서도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해졌다. 

전국 15개 시·도 교육감들은 지난 24일 공동선언문을 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즉각 중단하라"며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떤 협조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선언에는 보수 성향의 김만복 울산교육감도 참여했다. 대구·경북교육감만 불참했다. 

종전 국정교과서를 찬성했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최근 반대로 돌아섰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8일 국정 역사교과서와 관련해 "오늘 교육부에서 발표하면서 충분히 설명할 것으로 안다"며 "철회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고, 교육부와 청와대 입장이 다른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여론을 수렴해서 국정 교과서와 검·인정 교과서를 혼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교육부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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